FRAGMEN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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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 시간은 흐르고 나는 멈췄다
2025 05 Gold Mirror Stainless Digital UV Printing 64cm × 50cm × 1.2T 새벽이 깊어 갈수록, 시간은 한없이 흘러가는데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당신을 떠올리는 일이 이토록 조용하면서도 잔인할 줄은 몰랐다. 모두가 잠든 밤, 고요함 속에서 울리는 그리움은 어떤 말보다 더 선명하게 가슴을 흔들었다. 그대의 숨결, 그대의 웃음, 아주 오래된 기억 속 풍경처럼 하나 둘 떠오르다 스르륵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건 잠들지 못한 나와 흐르고만 있는 시간 뿐이었다. 시간은 참 야속하게도, 나는 그런 시간의 흐름을 미워하면서도 끝내 붙잡지 못한 채, 그 밤을 하염없이 지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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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OT
2025 05 Gold Mirror Stainless Digital UV Printing 50cm × 58cm × 1.2T 과거에서부터 지금의 현대까지 로봇이라는 존재는 인간에게 특별한 상상의 대상이었다. 인간을 닮은 로봇은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고, 때로는 인간보다 더 순수한 존재일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만들었다. 어린 시절 나는 현실보다 SF 애니메이션과 게임 속 로봇의 세계에 더 깊이 몰입하곤 했다. 각지고 기계적으로 분할된 형태와 인간을 닮은 얼굴은 강한 인상으로 남았고, 그 이미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 속에서 조금씩 흐려지고 변형되었다. 이 작품은 그 희미해진 기억을 다시 떠올리며 제작한 작업이다. 얼굴을 이루는 수많은 파편들은 기계의 구조이자 기억의 구조를 의미한다. 조각들은 흩어지고 다시 연결되며 하나의 얼굴을 만들어내지만, 완전한 형태에는 도달하지 않는다. 나는 그 사이에서 인간과 기계의 경계보다, 시간이 지나며 변화하는 기억과 감정의 모습을 바라보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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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그랬다
2025 05 Gold Mirror Stainless Digital UV Printing 50cm × 61.3cm × 1.2T 어느 날 문득, 웃어야 할지, 아무 말 없이 있어야 할지 잠시 망설이게 되는 순간이 있다. 분명 웃고 있었는데 마음 한편은 조금 무겁기도 하고, 괜찮다고 생각하면서도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함께 밀려올 때가 있다. 하나의 감정으로는 정리되지 않는 마음이 얼굴 위에 잠시 머물렀다. 웃음과 망설임, 편안함과 어색함이 뒤섞인 표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흐려졌고, 남아 있는 것은 정확한 사건보다 눈빛과 입가에 스쳐 지나갔던 감정의 흔적이었다. 나는 그 기억을 하나의 얼굴로 그대로 되돌리기보다, 기억 속에 남은 감정들을 여러 파편으로 나누어 다시 이어보았다. 서로 다른 조각들이 한 얼굴 안에서 겹치고 흩어지듯, 그날의 마음도 하나의 감정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분명 입가에는 미소가 남아 있었지만, 그것이 기쁨이었는지, 애써 지어낸 웃음이었는지는 이제 선명하지 않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조금 흐릿하다. 다만 그날의 표정과 그 안에 머물렀던 여러 감정만은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날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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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이었다
2025 09 Gold Mirror Stainless Digital UV Printing 61cm × 50cm × 1.2T 오랜만에 또래 친구들을 만났다. 예전처럼 웃고 떠들며 안부를 나누는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변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스쳐 지나가는 그녀들의 얼굴에서 시간이 흘렀음을 느끼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고, 일을 하고, 가족을 돌보며 살아온 하루하루가 말없이 얼굴에 남아 있었다. 행복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저마다 소중한 삶을 살아가는 동안 기쁨과 고민, 책임과 사랑이 함께 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짧은 순간, 나는 웃고 있는 얼굴 너머로 각자의 시간을 바라보았다. 누구도 같은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오늘을 살아내고 있었다. 그날은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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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
2025 09 Gold Mirror Stainless Digital UV Printing 50cm × 67cm × 1.2T 삼촌은 언제나 조용한 사람이었다. 큰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곁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탁구를 사랑하는 모습도, 매사에 진심을 다하는 모습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다. 유년 시절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자녀들의 머리를 정성껏 묶어주고, 마지막까지 예쁘게 핀을 꽂아 주던 모습이었다. 특별한 일이 아니었지만, 그 작은 손길에는 사랑과 다정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시간이 흘러도 사람은 얼굴보다 인상을 먼저 기억하게 된다. 나에게 삼촌은 언제나 따뜻한 웃음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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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남이
2025 05 Gold Mirror Stainless Digital UV Printing 50cm × 50cm × 1.2T 미남이를 처음 알게 된 건,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의 일이었다. 큰 이모께서 우리 집에 보내주신 작은 생명. 그게 바로 ‘미남이’였다. 어린 나는 생각했다. “너의 이름은 왜 미남이일까?” 이름만 들어도 왠지 잘생기고 멋있을 것 같았지만, 정작 미남이의 사진 한 장 남아 있지 않다. 그래도 마음속 어딘가에는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 그 미남이의 얼굴, 미소, 그리고 따뜻했던 그 느낌. 지금도 가만히 눈을 감으면, 기억 속 미남이가 조용히 다가와 웃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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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예삐
2025 05 Gold Mirror Stainless Digital UV Printing 50cm × 50cm × 1.2T 천천히 길을 걷고 있었다. 도로에는 차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하루였다. 내 옆에서 허리가 굽은 할머니 한 분이 천천히 걸어가고 계셨다. 할머니가 말하셨다. “예삐야, 가자.” 할머니 곁에는 몸집이 크고 엉덩이가 통통한 불독 한 마리가 뒤뚱뒤뚱 걸음을 맞추며 따라가고 있었다. 작고 앙증맞은 이름과는 달리 묵직한 몸집을 가진 모습이 왠지 모르게 웃음이 지어졌고 사랑스러웠다. 예삐는 가끔 걸음을 멈춰 길가의 냄새를 맡고,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천천히 할머니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은 봄날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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섞여버린 기억
2025 05 Gold Mirror Stainless Digital UV Printing 50cm × 50cm × 1.2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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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의 미루쿠
2025 09 Gold Mirror Stainless Digital UV Printing 57.5cm × 50cm × 1.2T 일본에서 생활하고 있는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자연스럽게 미루쿠를 떠올리게 하는 계절이 되었다. 최근 2년 동안 지인의 부탁으로 잠시 함께 지냈던 비숑 미루쿠는 풍성한 몸으로 집 안을 바쁘게 뛰어다니며 웃음을 전해 주었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 미루쿠를 바라보며 웃고, 평범한 시간을 함께 보냈을 뿐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도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그날의 분위기와 미루쿠의 밝은 모습이다. 일 년에 한두 번뿐인 짧은 만남이었지만, 미루쿠는 우리 가족에게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선물해 주었다. 그래서 지금도 크리스마스가 오면 가장 먼저 활기찬 발걸음과 해맑은 눈빛이 기억 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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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많이 본 곰돌이
2025 09 Gold Mirror Stainless Digital UV Printing 55.5cm × 50cm × 1.2T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곰돌이가 문득 떠올랐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고, 언제 처음 만났는지도 알 수 없었다. 어릴 적 품에 안고 잠들었던 인형이었는지, TV 속에서 스쳐 지나간 캐릭터였는지, 기억은 흐릿하게 섞여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선명했던 모습은 조금씩 사라졌지만, 커다란 눈과 익숙한 표정만은 이상하리만큼 오래 남아 있었다. 그 얼굴은 하나의 기억이 아니라 여러 기억이 겹쳐진 모습이었다. 나는 그 희미한 기억들을 하나씩 이어 붙여, 어디서 본 적은 있지만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 곰돌이의 얼굴을 다시 만들어 보았다. 가끔은 이름보다 익숙한 느낌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